권력을 가진 사람은 정말 행복할까요? 저는 예전에 회사에서 작은 프로젝트 리더를 맡았을 때, 책임과 권한이 커질수록 오히려 불안감이 함께 커지는 걸 경험했습니다.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황제 측천무후를 다룬 영상을 보면서, 그녀가 최고 권력을 쥐고도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마지막 장면이 제 경험과 묘하게 겹쳤습니다. 일반적으로 측천무후는 잔혹한 권력자로만 알려져 있지만, 제가 영상을 보고 느낀 건 그녀가 단순히 악녀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계속 극단적 선택을 강요받은 사람'에 가까웠다는 점입니다.

어린 시절의 상처가 만든 권력욕
측천무후의 권력욕은 어린 시절 경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부모를 잃고 사촌들에게 의지해야 했던 그녀는 가족에게조차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았습니다. 영상에 따르면 사촌들은 어린 측천무후를 돈을 받고 팔아넘겼고, 도망쳐 돌아와도 다시 기방에 팔려고 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기방이란 조선시대로 치면 기생집 같은 곳으로, 당시 여성이 팔려가면 평생 그곳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던 곳입니다. 저는 이 부분을 보면서 제가 과거에 인간관계에서 배신을 당했던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물론 영상 속 상황만큼 극단적이진 않았지만, 믿었던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았을 때 "다시는 약해 보이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측천무후 역시 비슷한 선택을 했을 겁니다. 그녀는 힘이 없어서 당했던 어린 시절의 상처 때문에 권력에 집착하게 되었고, 이후 황궁에 들어가서도 그 트라우마(Trauma)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트라우마란 심리적 충격이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상태를 의미하는데, 측천무후의 경우 어린 시절 학대 경험이 평생 그녀의 선택을 지배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역사서에도 측천무후가 황후가 된 직후 가장 먼저 한 일이 자신을 학대했던 사촌들을 모함하여 처형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그녀는 조카를 독살하고 그 죄를 사촌들에게 뒤집어씌웠는데, 이는 단순한 복수를 넘어 과거의 상처를 지우려는 시도였을 겁니다.
딸을 희생시킨 황후 자리
측천무후가 저지른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자신의 친딸을 죽인 일입니다. 일반적으로 모성애는 본능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사람은 극한 상황에서 본능조차 억누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저 역시 과거에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감정을 억누르고 이성적 판단을 내린 적이 있는데, 물론 영상 속 상황처럼 극단적이진 않았습니다.
영상에 따르면 측천무후는 왕황후와 소숙비를 제거하기 위해 자신의 딸 안정공주를 직접 살해했습니다. 그녀는 왕황후를 신당으로 유인한 뒤, 미리 죽여놓은 딸의 시신을 황후가 발견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후 황제 고종 앞에서 왕황후와 소숙비를 딸을 죽인 범인으로 몰아 사지를 자르는 끔찍한 형벌로 처형했습니다.
이 사건은 정치적 숙청(Purge)의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여기서 숙청이란 정치적 반대파를 제거하는 행위를 뜻하는데, 측천무후는 이를 위해 자신의 딸까지 희생시켰습니다. 당나라 역사서인 《자치통감》에도 측천무후가 딸을 죽여 정적들을 제거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출처: 한국고전번역원).
저는 이 부분을 보면서 "사람이 한 번 잘못된 방향으로 가기 시작하면 멈추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를 다시 느꼈습니다. 측천무후는 살아남기 위해 딸을 희생시켰지만, 그 선택 이후로 더 이상 되돌아갈 수 없는 길을 걷게 된 것 같았습니다.
황제마저 위협한 무소불위의 권력
황후가 된 측천무후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점차 황제의 권한까지 넘보기 시작했고, 결국 황제 고종을 대놓고 위협하는 수준까지 이르렀습니다. 영상에서 측천무후가 물고기를 예로 들며 황제에게 "자리를 벗어나면 목숨을 잃는다"고 협박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는 정치적 헤게모니(Hegemony) 장악의 과정이었습니다. 여기서 헤게모니란 절대적 지배권을 의미하는데, 측천무후는 황제보다 더 강한 권력을 행사하며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정사(政事)를 직접 주관했고, 황제는 병을 핑계로 두문불출했습니다.
저는 과거에 조직에서 누군가가 권한을 남용하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처음엔 작은 월권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점점 심해지더군요. 측천무후의 경우도 비슷했을 겁니다. 처음엔 황제를 보좌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어느새 황제 위에 군림하게 된 것이죠.
측천무후는 자신의 권력을 위협하는 사람은 누구든 제거했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아들인 황태자조차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영상에 따르면 그녀는 황태자를 위협하기 위해 죽인 이들의 위패가 있는 신당으로 데려가 "네 이름도 여기에 올릴 수 있다"며 공포에 떨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황태자는 어머니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측천무후가 일생 동안 죽인 사람이 100여 명에 이르며, 그중 23명이 자신의 가족이었다고 합니다. 이는 단순한 권력욕을 넘어 병적인 집착에 가까웠습니다.
중국 최초 여황제의 비참한 최후
측천무후는 결국 중국 역사상 최초의 여황제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셋째 아들 중종을 황제로 앉혔다가 불과 2개월 만에 폐위시키고 스스로 황제 자리에 올랐습니다. 국호를 당에서 주(周)로 바꾸며 새로운 왕조를 선포한 것이죠.
하지만 그녀의 통치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영상에 따르면 측천무후는 정사를 팽개치고 남총(男寵), 즉 젊은 남자들을 가까이 두며 향락에 빠졌습니다. 여기서 남총이란 여성 권력자가 총애하는 남자를 뜻하는데, 측천무후는 3천 명에 이르는 남총을 두었다고 전해집니다. 이는 국정 운영의 부재를 의미했고, 결국 반정(反正)의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반정이란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기 위한 쿠데타를 의미합니다. 측천무후 제위 15년에 대신들이 반란을 일으켜 그녀를 폐위시키고, 과거 측천무후가 쫓아냈던 중종을 다시 황제로 복위시켰습니다. 《신당서》에도 측천무후가 반란으로 폐위되어 유배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출처: 중국국가도서관).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권력이라는 달콤한 열매에 취해 정작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사람의 전형을 본 것 같았습니다. 측천무후는 최고 권력을 손에 쥐었지만, 결국 그녀에게 남은 건 악녀라는 오명뿐이었습니다. 영상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가 자신이 죽인 이들의 위패 앞에서 "내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구나"라고 말하는 모습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측천무후의 삶을 보면서 저는 권력이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그리고 잘못된 선택이 어떻게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드는지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물론 그녀의 선택을 정당화할 순 없지만, 어린 시절의 상처가 평생 그녀를 지배했다는 점은 씁쓸하게 다가왔습니다. 저 역시 과거의 상처 때문에 사람을 쉽게 믿지 못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다행히 어느 순간 멈추고 방향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측천무후는 끝까지 멈추지 못했고, 그 대가는 너무나 컸습니다. 권력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성을 잃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