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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5세 살해 미스터리 (리처드3세, 런던탑, 장미전쟁)

by sidespark 2026. 2. 28.

런던탑

13살 소년 왕 에드워드5세가 런던탑에서 동생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1483년, 즉위한 지 겨우 며칠 만에 왕위를 빼앗기고 유폐된 두 왕자의 운명은 지금까지도 영국 역사상 가장 논란이 되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저는 이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 단순한 권력 투쟁이 아니라 한 소년의 일상이 정치적 계산 속에서 통째로 사라진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백년전쟁 이후 귀족들의 피의 내전, 장미전쟁은 왜 시작됐나

장미전쟁(Wars of the Roses)은 1455년부터 1485년까지 약 30년간 영국을 피로 물들인 내전이었습니다. 여기서 장미전쟁이란 랭카스터 가문의 붉은 장미와 요크 가문의 흰 장미가 왕위를 두고 싸운 귀족 간 분쟁을 의미합니다. 백년전쟁에서 프랑스에 패배한 뒤 유럽 대륙의 영토를 모두 잃고 돌아온 영국 귀족들은 좁은 섬나라에 모여들었고, 자연스럽게 왕위 계승권을 둘러싼 갈등이 폭발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전쟁이 민간인을 철저히 배제한 채 귀족들끼리만 싸웠다는 사실입니다. 도시와 촌락의 중립을 존중하며 수천 명의 귀족들만 도끼와 칼을 들고 육탄전을 벌였다고 합니다(출처: 영국국립기록보관소). 저는 이 대목에서 당시 전쟁이 얼마나 계급적으로 분리된 사건이었는지 실감했습니다. 일반 백성들은 그저 구경꾼이었고, 권력을 가진 소수만이 서로를 죽이는 게임을 했던 거죠.

랭카스터 가문의 헨리6세와 마거릿 왕비가 요크 가문과 맞섰지만, 결국 요크 가의 에드워드4세가 승리하며 왕위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에드워드4세는 1483년 41세의 젊은 나이에 갑자기 사망했고, 그의 13살 아들 에드워드5세가 왕위를 이어받게 됩니다.

런던탑에서 사라진 두 왕자, 리처드3세가 정말 범인일까

에드워드5세가 즉위했을 때 가장 큰 문제는 그가 너무 어렸다는 것입니다. 13살 소년이 복잡한 정치 상황을 통제할 수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섭정(Regency)이 필요했습니다. 여기서 섭정이란 어린 왕을 대신해 국정을 운영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이 역할을 맡은 사람이 바로 에드워드4세의 동생,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였습니다.

리처드는 형이 방탕한 생활을 했다는 점을 근거로 에드워드5세와 그의 남동생이 친자식이 아니라는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에드워드4세가 방탕했던 건 사실이지만, 왕비가 문란했다는 증거는 전혀 없었죠. 그럼에도 리처드는 귀족들과 사제들을 압박해 스스로를 왕으로 추대하도록 만들었고, 에드워드5세는 즉위한 지 며칠 만에 폐위되었습니다.

쫓겨난 두 왕자는 런던탑(Tower of London)에 유폐되었습니다. 런던탑은 단순한 감옥이 아니라 왕실의 거주지이자 요새로도 사용되던 곳이었기에, 처음에는 "잠시 머무는 궁전" 정도로 여겨졌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소년은 완전히 사라졌고, 런던탑에서 어린 소년들의 유골이 발견되면서 살해설이 유력해졌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들을 죽였을까요?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당연히 리처드3세입니다. 셰익스피어는 희곡 《리처드3세》에서 그를 꼽추에 열등감 가득한 악인으로 묘사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리처드3세는 꼽추가 아니라 한쪽 팔이 약간 오그라든 정도였고, 꽤 유능한 통치자였다고 합니다(출처: 리처드3세협회).

저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정말 리처드3세가 조카들을 죽였을까요? 역사학계에서는 또 다른 용의자로 헨리7세를 지목하기도 합합니다. "돈 번 놈이 범인이다"는 말처럼, 두 왕자의 죽음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본 사람은 결과적으로 리처드3세를 무너뜨리고 왕위에 오른 헨리였으니까요.

튜더왕조의 탄생과 역사 서술권, 승자가 쓴 진실

리처드3세는 왕위에 오른 지 겨우 2년 만에 1485년 보스워스 전투에서 전사했습니다. 그를 무너뜨린 랭카스터 가문의 후손 헨리 튜더가 헨리7세로 즉위하며 장미전쟁은 막을 내렸습니다. 헨리7세는 요크 가문의 엘리자베스와 결혼해 붉은 장미와 흰 장미의 통합을 상징적으로 완성했고, 이후 튜더 왕조(Tudor Dynasty)는 영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왕조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여기서 튜더 왕조란 1485년부터 1603년까지 영국을 통치한 왕가로, 헨리8세와 엘리자베스1세 같은 유명한 군주들을 배출한 가문입니다. 튜더 왕조는 자신들의 정통성을 강화하기 위해 이전 왕조인 요크 가를 철저히 악으로 묘사했습니다. 리처드3세는 조카를 죽인 찬탈자로, 요크 가는 무능하고 탐욕스러운 집단으로 기록되었죠.

저는 이 대목에서 역사 서술권(Historical Narrative)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역사 서술권이란 과거의 사건을 해석하고 기록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하는데, 이는 언제나 승자의 몫이었습니다. 리처드3세는 자신을 변호할 기회조차 없이 악당으로 낙인찍혔고, 그의 진실은 영원히 묻혔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현대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는 리처드3세 재평가 작업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가 조카들을 죽였다는 직접적 증거는 없으며, 오히려 헨리7세나 다른 귀족이 범인일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런던탑에서 어린 소년들의 유골이 발견되었다는 사실뿐입니다.

에드워드5세는 정치적 실수도, 정책 실패도 없었습니다. 그는 단지 '왕위 계승자'였을 뿐이고, 그 존재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위협이었습니다. 저는 이 사건이 단순한 살인 미스터리가 아니라 권력 구조 자체가 만들어낸 폭력이라고 봅니다. 장미전쟁은 봉건 귀족 체제가 얼마나 불안정하고 잔혹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며, 에드워드5세는 그 시대의 구조적 희생자였습니다.

만약 당신이 13살에 왕이 되었다면 어땠을까요? 선택권도, 신뢰할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던 그 소년의 공포를 상상해봅니다. 역사는 거대한 서사지만, 그 안의 인물은 결국 우리와 같은 한 명의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icKt1N25p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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