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단을 못 내리는 리더는 과연 무능한 걸까요, 아니면 시대의 희생자일까요? 저는 몇 년 전 중간관리자로 일하면서 이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았습니다.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와 아래에서 올라오는 불만 사이에서 "조금만 더 지켜보자"를 반복하다가, 결국 모든 것이 폭발하는 순간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루이 16세의 1791년 바렌 도주 사건을 보면서, 저는 그가 단순히 무능했다기보다는 결정적 순간에 잘못된 선택을 한 리더였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바렌 도주 직전, 왕실이 놓인 위기
1789년 10월 베르사유 습격 사건 이후, 왕실은 튈르리 궁전에서 사실상 연금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연금(軟禁)이란 법적 구속은 아니지만 행동의 자유가 심각하게 제한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라파예트 후작이 이끄는 군대가 왕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감시했고, 의회는 미라보 백작을 중심으로 입헌군주제를 추진했습니다.
저는 이 시기 왕실의 상황이 제가 겪었던 조직 내 갈등과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겉으로는 모든 것이 정상처럼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균열이 점점 깊어지고 있었던 거죠. 루이 16세는 구체제 해체 작업을 지켜보면서도 왕권만큼은 완강하게 지키려 했습니다.
1791년 초, 왕실을 지탱하던 두 기둥 중 하나가 무너집니다. 미라보 백작이 갑작스럽게 사망한 것입니다. 그는 왕실과 은밀히 협력하면서 의회 내에서 왕실의 이익을 대변했던 인물이었습니다(출처: 프랑스 국립문서보관소). 그의 죽음은 왕실이 의회 내 마지막 방파제를 잃었다는 의미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1791년 부활절, 왕실 가족이 생클루 궁전으로 나들이를 가려다 군중에게 가로막히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한 시간 반 동안 마차 안에 갇혀 온갖 수모를 당한 이 경험은, 루이 16세에게 파리를 떠나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만들었습니다.
페르젠이 준비한 완벽한 탈출 계획
스웨덴 귀족 페르젠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연인이자, 왕실 탈출 계획의 실질적 설계자였습니다. 그는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프랑스 동부 전역을 직접 답사하면서 치밀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탈출 경로 상의 모든 역참(驛站)을 점검했고, 믿을 수 있는 귀족들을 섭외해 용병대를 확보했습니다. 여기서 역참이란 오늘날 고속도로 휴게소처럼 말을 교체하고 식사를 할 수 있는 중간 거점을 말합니다.
이 준비 과정에서 페르젠이 들인 비용은 수백억 원 규모로 추정됩니다. 워낙 부유한 귀족이었지만, 그조차도 막대한 빚을 내야 했다고 합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오빠인 레오폴트 2세는 돈이 없다며 지원을 거절했지만, 페르젠은 모든 재산을 쏟아부으면서 계획을 완성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보면서, 진정한 헌신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페르젠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반면 루이 16세는 결단을 계속 미루면서 D-day를 여러 차례 연기했고, 그 과정에서 페르젠의 빚만 늘어났습니다.
1791년 6월 20일, 마침내 거사일이 정해졌습니다. 왕실 가족은 평소와 다름없이 생활하다가, 모두가 잠든 시각에 변장을 하고 페르젠이 준비한 마차에 올랐습니다. 튈르리 궁전의 비밀계단이 큰 역할을 했고, 라파예트조차 아무런 낌새를 느끼지 못했습니다(출처: 베르사유 궁전 공식 아카이브).
봉디 역참에서 터진 루이의 질투
파리를 무사히 빠져나온 일행은 가장 가까운 역참인 봉디에 도착했습니다. 페르젠이 미리 준비해둔 대형 마차로 갈아타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마침 행사가 있어서 사람들이 많았고, 발각을 우려한 협력자들이 마차를 멀리 이동시켜놓았습니다. 마차를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던 중, 루이 16세가 갑자기 등불을 들고 마차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처음 접했을 때, 도대체 왜 그랬을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돌발행동이었기 때문입니다. 루이를 찾는 데 또 시간을 허비한 뒤, 일행은 대형 마차에 올라 다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그 다음에 벌어졌습니다. 봉디 역참에서 말을 교체하고 출발하려는 순간, 루이 16세가 페르젠을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무심한 듯이 말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빠지시오. 벨기에로 가시오."
마차 안에 있던 모두가 경악했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물론이고, 왕의 여동생 엘리자베트와 가정교사 투르젤 부인까지 모두 놀란 표정이었습니다. 이는 루이가 그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고 혼자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페르젠은 필사적으로 설득했습니다. "폐하, 여기서 계획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무조건 샬롱까지는 제가 가야 합니다. 그곳을 넘어가야 부대의 호위를 받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루이는 근엄한 표정으로 못을 박았습니다. "짐이 알아서 할 것이오!"
저는 이 순간 루이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제 경험을 통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질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든 계획을 세우고, 모든 비용을 대고, 아내를 구하는 영웅은 페르젠이었습니다. 자신은 그저 실려가는 짐짝에 불과했죠. 루이는 적어도 성공만큼은 자신의 힘으로 이루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결단의 타이밍을 놓친 리더의 최후
결국 페르젠은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 이상 시간을 끌면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고, 모두가 위험해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리 앙투아네트와 마지막 눈빛을 교환한 페르젠은 "절대 마차에서 내리시면 안 됩니다"라는 당부를 남기고 벨기에로 향했습니다.
페르젠이 빠진 뒤, 왕실 가족의 여정은 점점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출발 시각이 많이 지체된 상태였고, 앞으로는 혁명세력이 포진한 위험한 역참들을 여러 곳 지나야 했습니다. 결국 바렌이라는 마을에서 루이 16세 일행은 발각되어 파리로 강제 송환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왕실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바렌 도주 실패 이후, 루이 16세는 더 이상 국민의 왕이 아니라 배신자로 낙인찍혔습니다. 1793년 1월, 그는 단두대에서 처형되었습니다(출처: 프랑스 혁명사 연구소).
저는 루이 16세가 악인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아내를 사랑했고, 가족을 지키고 싶어 했던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리더로서 그는 결정적 순간마다 결단을 미루거나 잘못된 선택을 했습니다.
루이 16세를 평가하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어떤 이들은 그를 무능한 왕이라고 하고, 또 다른 이들은 시대의 희생자라고 말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둘 다 충분하지 않다고 봅니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지만,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이 좋은 통치자가 된다는 보장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상, 갈등을 오래 미루면 문제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폭발합니다. 루이 16세의 단두대는 단순한 형벌이 아니라, 신뢰 붕괴의 상징처럼 느껴집니다.